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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8)<br>김수악 명무의 '진주교방굿거리춤' 춤사위진주 교방굿거리춤 진주교방굿거리춤은 최완자에게 사사받은 기방굿 거리에 김녹주로부터 배운 소고가락이 더해져 한바탕이 이루어진 춤이다. 굿거리는 민속음악과 민속춤의 기본이자 대표적 장단이며 춤으로서는 살풀이의 원판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본래는 굿거리 8마루로만 이루어진 춤이었으나 경남 덧배기의 소고춤이 첨가되면서 흥과 멋이 한층 가미되었다. 1997년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받은 춤으로 진주검무, 진주포구락, 진주 한량무와 함께 교방의 고유한 레퍼토리이다. 진주교방굿거리춤은 ‘입춤’으로 기본춤의 성격이 강하며 다양한 이름으로 명명된다. 즉, 교방에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굿거리춤, 수건을 들고 추는 수건춤, 자신의 감정에 따라 거침없이 추는 즉흥무·허튼춤, 그리고 맨손으로 추는 손춤 등이 있다.진주는 조선시대부터 여기女妓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음악이 풍부했던 예향이다. 진주교방굿거리춤은 진주남강의 풍광과 권번에서 마지막 예인으로 지냈던 춘당春堂 김수악金壽岳, 1926~2009에 의해 전승되었다. 김수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이다. 김수악은 8세 때 권번으로 들어가 진주권번 선생인 김옥민으로부터 처음으로 춤을 사사하고, 서울에서는 한성준, 김해에서는 김녹주에게서 소고춤과 살풀이를 배웠다. 김수악의 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12세에 권번에서 만난 최완자의 입춤, 기본굿거리, 진주검무 등이다. 김수악은 춤뿐 아니라 소리도 배워 명인으로서 악가무에 능했다. 당대 최고의 명창인 유성준·정정렬로부터 판소리를, 전라도의 김두영으로부터는 구음을, 박세근·여순근·김종기로부터는 기악을 배웠다. 결혼 후 김수악은 잠시 춤을 그만두었으나 1946년 논개 비석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공연 ‘대춘향전’의 출연으로 다시 무대에 복귀했다. 194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예술제인 ‘개천예술제’에서 춤과 소리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진주검무 예능보유자가 되면서 김수악은 진주 지역의 전통춤을 알리는 명인으로서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김수악 약력 1926년 5자매 중 둘째로 출생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12호 진주검무 기능보유자 지정1969년 목포 유달국악원 지도교수1971년 광주호남국악원 지도교수1973년 김수악민속예술학원장1975년 경성대 기악강사1977년 진주시립국악원 전임지도교수1983년 한국국악협회 경남지회 진주시 지부장1986년 진주시립국악학교 지도교수1997년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기능보유자 지정 수상 경상남도문화상, 경남진주시문화상,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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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의 지역춤, 부산·경남지역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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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교방굿거리춤’ 명인 김수악"그의 구음이면 헛간의 도리깨도 춤춘다" "그 앞에만 갔다 오면 춤이 달라진다" 춘당(春堂) 김수악은 전설적인 영남 제일의 춤꾼이다. 김수악은 1926년 함양군 안의읍에서 만석꾼 집안 장남의 5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순녀. ‘수악’은 집에 들른 스님이 명이 길어지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큰 언니 김취란은 가야금의 명인이며 황병기의 스승으로 유명한 예인이다. 7살에 진주로 이사한 순녀는 9살부터 진주권번에서 본격적으로 춤, 소리, 악기를 배웠다. 판소리는 유성준·정정렬·이선유·김준섭 등 당대 최고의 명인들에게 다섯 바탕을 사사했다. 구음은 전두영에게 배웠고, 강태홍·김종기·박상근 등에게 가야금과 아쟁도 배웠다. 춤은 김옥민을 시작으로 한성준의 ‘검무’, 최완자의 ‘굿거리춤’ ‘검무’ ‘입춤’을 물려받았다. 26세에 어머니가 되었지만 춤이 더 귀했다. 결혼과 육아로 춤을 접었는데. 1946년 의기 논개의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금공연 ‘대춘향전’ 출연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1949년에는 진주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예술제 ‘개천예술제’에서 춤과 소리, 연주로 대중을 휘어잡았다. 1960년대 초반 남편 사별후 시골 아낙네로 살던 중 국가의 권유로 '진주 검무' 예능보유자가 된다. 1969년부터 목포 유달국악원, 1971년 광주 호남국악원에서 춤을 가르치고 1973년 진주 민속예술원을 설립했다. ‘강산 제일무’라는 별칭은 1980년대 후반 서울에서 ‘교방굿거리춤’을 추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최완자의 ‘굿거리춤’에 김녹주류의 ‘소고춤’을 이어붙여 만든 김수악만의 브랜드 ‘진주교방굿거리춤’. 97년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고 김수악은 예능보유자가 됐다. "굿거리춤은 발디딤과 손놀림 등 모든 춤의 원동력이라 그것부터 배워야 해요. 교방이라는 이름 때문에 기생춤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마당에서 추는 군무와 달리 실내에 서서 추는 입춤이어서 동작이 아담하고 기교가 뛰어나죠.” S라인의 손목사위도 김수악 굿거리춤의 특징이다. "60년대부터 춤을 가르치는데, 녹음한 곡은 다양하지도 않고 듣기도 민망할 만큼 시원치않았어요. 그렇다고 악사를 쉽게 구할 수도 없고. 호남에는 소리꾼과 악사들이 많은데 영남은 사정이 달랐어요. 결국 제가 장구치고 입으로 소리 내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지요.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내려니 악기 특성별로 소리도 달리 내야 했어요. 어릴 때 판소리 다섯바탕을 남선생에게 배우면서 호방한 동편제를 익혔기 때문인지, 장조와 단조의 구음을 자유롭게 구사했지요.” 전국에서 공연되는 굿거리춤에는 녹음된 김수악의 구음이 단연 최고다. 병상에서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무겁게 추되 발디딤을 살랑살랑하면서 속은 깊으게. 몸에 알뜰한 멋이 들어야만 알뜰한 예술이 나와!” 김수악 약력 1926년 5자매 중 둘째로 출생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12호 진주검무 기능보유자 지정1969년 목포 유달국악원 지도교수1971년 광주호남국악원 지도교수1973년 김수악민속예술학원장1975년 경성대 기악강사1977년 진주시립국악원 전임지도교수1983년 한국국악협회 경남지회 진주시 지부장1986년 진주시립국악학교 지도교수1997년 경남무형문화재 제 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기능보유자 지정 수상 경상남도문화상, 경남진주시문화상,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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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통춤 명인 학산(鶴山) 김덕명 생애와 춤세계 221세기 밀레니엄시대(2000년)를 맞이한 김덕명(1924~2015)옹은 어느덧 고희(古稀)도 훨씬 지난 76세였지만 노년기의 공연활동과 지역민속발굴과 지도에는 장년 못지않게 원숙함과 열정이 넘쳐있었다. 2000년 4월19일 <국립극장 50주년 국립무용단 제79회 정기공연> 양산학춤 특별초청공연으로 영남춤 명인 ‘서울 나들이’에 초청되어 갈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4.12) 예고기사와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4.19)에 네 사람이 펼치는 네 가지 색깔의 춤판에 대한 소개에서 "소리는 호남, 춤은 영남이라는 말은 예로부터 풍류의 정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영남춤이 한국춤의 주류에서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춤이 중앙집중 되었고, 무형문화재 지정과정에서 호남쪽 춤이 주요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4人4色 나흘간의 춤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영남춤이 처음으로 서울의 국립극장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의 4색이 영남춤판의 주인공은 영남춤의 명인들인 김덕명, 김온경, 이윤석, 하용부이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씨는 양산 사찰학춤을 들고 나온다. 외로이 양산학춤을 지켜온 김씨는 이번 무대에서 이 춤의 원형을 선보였다”라고 알렸다. 이어서 5월 16·17일 호암아트홀무대에 오르게 되자 각종 매스콤에 대서특필하였다. 서울신문(5.2)기사 ‘인간문화재 3人의 전통춤 진수’와 조선일보(5.11) ‘인간문화재 한 무대에’ 기사에는 ‘사상 유례 없을 대원로들의 합동공연이 마련된 무대는 오는 16·17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제18회 명무명인전>, 세 노옹은 첫날 잇따라 무대에 선다’라고 하였고,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보유자인 김덕명옹은 ‘양산사찰학춤’을 춘다.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된 통도사에서 대대로 계승되었다는 이 춤은 지난 87년 일본 NHK의 세계춤 종합평가에서 ‘춤의 황제’라는 극찬을 들었다"라고 알렸다. 2002년 9월 6~7일, 공연기획사 이일공과 호암아트홀이 주최하고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후원하는 행사로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공연이 있었는데, 각종 매스콤에 예고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덩실 덩실 얼쑤! 8인 男舞 한마당,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남자들이 추는 정통 민속춤이 한자리에 모인다. 남무(男舞)부재 현상 속에 민속무용은 그나마 궁중무용에 비하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다. 특히 문장원·황재기·김덕명은 80대로 민속춤의 산증인이다’ ,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 아비들>에서 멋과 흥으로 대변되던 우리 춤의 진수를 선보인다.’라고 했으며, ‘양산사찰학춤의 김덕명(80)은 일본 기생의 잉어춤 등에 능하고 학춤은 국내 최고라는 평이다. 학이 땅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고 암놈을 희롱하는 행동을 표현한 춤으로 도포와 갓을 쓰고 춘다.’(서울신문, 8. 29) 그밖에도 연합뉴스(8.29), 한국경제(8,29), 현대불교(8.20), 조선일보(9.5) 등에 예고기사로 크게 보도되었다. 춤판에서 남자춤꾼들의 모습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전통무용은 현대무용이나 발레에 비해 '남무부재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춤에 한 평생을 걸어온 8명의 남성춤꾼들이 모처럼 한데 모여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인다. 오는 9월6일, 7일 이틀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지는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이 화제의 공연이다. 무대에 오르는 8명의 춤꾼중 셋은 이미 80대의 고령으로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리만 만들어지면 어디에서든 어깨를 들썩이며 일품 춤사위를 뽑아내는 '끼'와 '열정'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옹(80)은 고고한 학의 자태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양산학춤을 선사한다. 훨훨 날다가 내려앉아 두루두루 살피고 먹이를 휙 낚아채는 학의 모습을 선비의 차림으로 유장하게 표현해 낸다.’(한국경제, 8.29) ‘제도권 무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다양한 한국 전통춤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농악판, 탈춤판, 사랑방 등 선조들의 삶 주변에서 흥겨운 '놀이'로 추었던 춤의 원형질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아울러 호방한 남성춤을 만나기 어려운 무용계 현실에 비춰볼 때도 분명 이색적인 무대다.(현대불교, 8.29) ‘공연 제목은 설화 속 춤꾼 '처용'에서 따왔다. 출연자들은 공연장이나 학교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전통춤을 지켜온 명인들이다. '무용가'로 불린 적이 없지만 자신의 춤세계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남다른 사람들로, 생활터전의 주변에서 명맥을 이어온 춤의 자유로운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80)씨가 선보이는 양산사찰학춤은 양산 통도사에서 전승돼 왔다는 학춤이다. 선비의 평상복인 도포에 갓을 쓴 채로 먹이를 살피다 휙 낚아채는 학을 재현한다. 김씨는 한량을 넘어선 직업 춤꾼으로 양반춤. 지성승무. 한량무. 나례무 등 다양한 춤사위를 보유하고 있다.(연합뉴스, 5.29) ‘무대에 오르는 춤을 보자. 승무, 살풀이, 태평무 등에 비해서는 대접이 형편없는 춤들이다. 그러나 명인들은 이에 연연하지 않고 너울너울 춤추며 한 세상을 보내고 있다. 당대 최고 즉흥춤이라는 문장원의 동래입춤, 맵시있는 자태가 빛나는 황재기의 고깔 소고춤, 한 마리 고고한 학을 연상시키는 김덕명의 양산 사찰학춤, 다양한 디딤의 묘미가 살아있는 정인삼의 진쇠춤, 굵고 시원한 마당춤…. 김덕명(78)옹은 어릴 적 부모가 보낸 절에서 도망쳐 나와 농악패를 따라 나섰다가 춤과 인연을 맺었다.’(조선일보, 9. 5) 2003년 11월 22일에는 <팔십인생의 춤> 학산 김덕명 80인생 정통고전춤 발표회(양산)가 양산문예회관에서 있었다. ‘양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양산학춤보존회가 주관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통도사의 학춤, 승무, 바라춤과 전통 고전춤을 습득하여 올바르게 전승하고 한량무를 발굴하여 경남도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학산의 열정과 그 공을 기리기 위한 무대로 그 문화생들이 자리를 마련했다. 순수 정통 학산 김덕명류의 팔십 인생의 춤이 선보이는 이번 무대에는 ‘지성승무’와 ‘양산학춤’, ‘한량무 극무’등 주위에서 쉽게 감상하기 힘든 10개의 작품이 공연되며 학산 김덕명도 직접 무대에 선다. 학산 김덕명은 양산시 동면출신으로 양산학춤을 오늘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장본인이며 불교 중앙문화예술원 원장과 김해시립전통무용단 단장, 국악협회 경남도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여 왔는가 하면 후진양성에도 평생을 몸 바쳐 온 예인이다.(경남일보, 11.21) '지난 94년부터 양산학춤과 연등바라춤을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양산시와 경남도에 여러번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다'며 '내가 죽기 전에 학춤과 연등바라춤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을 꼭 보고싶다'고 말했다. 또 '전국에 걸쳐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내가(김옹) 가진 28가지의 춤을 표현하는 제자는 아직 없어 죽기 전에 다 전수할 수 있을지 항상 불안하다'고 걱정한다.‘ (부산일보, 11.28) ‘양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양산학춤보존회가 주관한 이번 공연은 통도사의 학춤, 승무, 바라춤과 전통 고전춤을 전승하고 한량무를 발굴하여 도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학산의 열정과 그 공을 기리기 위해 문하생들이 마련했다. 이번 무대에는 '지성승무'와 '양산학춤', '한량무 극무'등 주위에서 쉽게 감상하기 힘든 10개의 작품이 공연되며 학산 김덕명 선생도 직접 무대에 올랐다. 불교 중앙문화예술원 원장과 김해시립전통무용단 단장, 국악협회경남도지부장 등을 역임한 학산 김덕명 선생은 양산사찰학춤, 연등바라춤, 지성승무 등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으로 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다.(현대불교, 12.1) 2005년 제8회 세계무용축제에서 다시 <전무후무(全舞珝舞)> 국보급 춤의 명인 6명이 무대에 올렸을 때에도 김덕명은 빠지지 않고 양산학춤을 추었다. ‘<전무후무(全舞珝舞, 珝는 옥이름 후)>. 춤의 명인 6명이 한 무대에 오른다. 강선영의 태평무, 김덕명의 양산학춤,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문장원의 입춤, 이매방의 승무,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가장 젊은 장금도(77)부터 최고령 문장원(88)까지, 이들의 평균 연령은 82세다. 김덕명 양산학춤은 너울너울 학을 닮아가는 한량을 그린다.’(조선일보, 9.22) ‘김덕명의 인터뷰 중 "학춤 출 땐 정신부터 학이 돼요. 요즘 춤추는 사람들은 장식에 치중하느라 뿌리를 놓치는 것 같아. 우리끼리야 누가 잘 하나 따져 뭘 해. 다들 춤에 미쳤지. 그렇지 않고서야 80 넘어 90이 다 될 때까지 고생고생 하며 춤출 수 있나. 앞으로 열흘 몸 건사 잘 해서 무대에서 구부러지지만 마시소들!(웃음)”(조선일보, 9.28) ‘걷는 것은 두려우나 춤은 두렵지 않다…. 지난 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오늘 하루를 위해서 일생을 장만해온 것처럼, 몸이 아니라 춤만 남았다….” 어느 이의 말처럼 전무후무한 공연이었다. 젊은날의 그것만 했으련만, 80년 묵은 육신에서 곰삭은 춤 맛은 감히 평할 것이 아니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 내외 관람하면서 "아주 신명이 났다”며 관람 소감을 밝혔다.’(경향신문, 10.10)(양산신문, 10, 5) 2008년 12월 5일 영남명무전 <무림평전(舞林平定)>이 통영시민회관 대극장에 있었다. 경남도의 전통 춤판을 지켜가는 남성 5인방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덕명, 이윤석, 하용부, 김선옥, 김홍종 선생이 영남명무전 ‘무림평정’(舞林評定)으로 다음달 5일 통영시민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경남도 전통춤계의 큰 어른들인 다섯 선생은 전국전통예술계에서도 반열에 올라있는 춤꾼들이자 광대들이다. 이들 다섯 춤꾼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지난달 람사르 총회 기념 인간문화재 명무전에서 한 무대 오른 후 이번에 통영을 찾게 됐다. 우리나라 대표 춤꾼이자 큰 선생인 김덕명 선생은 이번 공연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의 곧음과 부드러움, 세심함과 단아함을 표현하는 호걸 양반춤으로 통영시민들과 만난다.<경남매일, 11월 24일> 호걸양반춤의 김덕명, 채상소고춤의 김선옥, 통영문둥북춤의 김홍종, 덧뵈기춤의 이윤석, 밀양북춤의 하용부. 경남 전통 춤판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는 명인들의 춤사위가 통영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이번 공연제목 ‘무림평정(舞林評定)’에는 다른 깊은 속뜻이 있다고 한다. 연출을 맡은 김홍종 선생은 "춤판을 평정한다는 제 잘난 멋의 과시가 아니라, 한 가지 분야에서 올곧게 정도를 지키며 살다보면 누구나 존경을 받아야 하는 세상의 이치를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속에는 김덕명 선생과 같은 선배를 아울러 모시고 싶은 후배의 마음도 함께 들어 있다고 한다.<양산신문, 12. 21> 구순의 나이에도 정정한 목소리와 자태는 제자들을 사로잡았다. 학산 선생은 공연이 아닌 발표회라는 것도 강조했다. "공연은 돈 받고 보여주는 거야. 발표회는 연습 결과를 보여주고, 관객들이 춤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양산학춤보존회는 구시대, 장악원 등 전문 예술인에 의해 생성돼, 1930년대에 평양 명기 김농주에 의해 양산권번에 정착됐다. 학산 선생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호걸양반춤의 호탕하고 의기 넘치는 춤도 선보였다. 구운몽을 바탕으로 만든 무언 무용극인 한량무의 해학은 웃음 을 연발하게 했다.<양산신문, 12.4> 2014년 3월20일 진주전통예술회관에서 학산 김덕명선생의 제2회 한량무발표회를 가졌다.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한량무’ 공연은 학산 김덕명선생의 가르침으로 우리나라에 하니밖에 없는 일곱배역이 있는 극으로 된 무용이다. 한량, 색시, 상좌, 주모, 승려, 별감, 마당쇠로 총 9마당으로 구성돼 있다.<진주인터넷신문, 2014. 3.20> 이상에 소개한 신문기사 외에도 많은 공연활동과 전수활동이 있었으나 지면관계로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구십대에 이르기까지 중앙무대와 향토무대를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무대를 장식하며 남성다운 춤, 영남덧뵈기춤, 사찰계춤의 진수를 보여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김덕명은 양산 통도사와 양산 권번에서 전승된 독특한 춤사위를 지닌 독보적인 춤꾼이다. 그런데 양산학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보류된 안타까움 속에 있을 때 진주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가 진주와 연을 맺게 된 것은 마지막 기녀출신들의 노력으로부터였다. 당시 김덕명은 그가 소원하던 학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에서 보류된 후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었을 때 연로한 진주의 보유자들이 김덕명을 찾아 지속적인 부탁을 했고 또한 진주는 전국 제일의 종합예술행사인 개천예술제가 개최되는 예향이라는 것과 그의 학춤발굴자였던 서국영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이다. 진주의 예술이 기녀들에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교방이 해체된 후 1913년 기녀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서 진주기생조합을 결성하였다. 이어 1928년 4월, 김창윤에 의해 진주권번이 운영되었으나 부실하였다가 1938년‘최치환’에 의해 진주예기권번이 창립되었다. 진주권번의 춤 선생인 최완자(崔完子)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주로 감영에 선발되어 궁중연희에 참가했다. 그녀의 제자 김수악(金壽岳), 강귀례(姜貴禮), 강순금(姜順今)등이 1967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김덕명을 모셔와 1976년부터 예향 진주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79년 5월2일자로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한량무가 지정되면서 보유자 김덕명 외 7명으로 등재되었다. 김덕명의 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뜻 깊고 빛나는 업적은 진주와 양산(梁山)지역에서 무형문화재를 전승시켰으며, 민속놀이 발굴과 전승에도 큰 공로를 김해지역에서 문화예술의 밑거름으로 남긴 가락오광대와 석전놀이, 김해농요 등을 발굴 전수시킨 흔적을 볼 때 그를 다재다능한 예술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1990년 후반, 양산시 덕계리에서 망시곱배기놀이 발굴하여 경남무형문화재 제23호 웅상장원놀이로 지정되는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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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 '청' 정기공연 새봄 - 가무악의 만남 4. 24● 일 시 : 2009년 4월 24일(금) 오후 7시 ● 공 연 장 :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 주 최 : 사물놀이 '청' ● 주 관 : 사물놀이 '청' ● 공연문의 : 사물놀이 '청'(010-2545-9938) 영남 성주풀이 - 정초에 풍물패가 집집을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할때 마루에서 성주고사를 하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먼저 성주의 내력을 사설로 풀어내며 집터를 잡고 집을 지어 그 집을 관장하는 성주지신에게 한해의 복을 빌고 액운을 떨쳐내는 소리로, 부산농악에서 연행되어지는 지신밟기 소리를 무대공연에 맞게 각색하였다. 사물놀이 - 인간의 호흡에서부터 파생된 장단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락이 펼쳐지며 악기 저마다의 음색을 가지면서도 서로의 빈곳을 채워 완전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타악기만으로 천지자연의 변화무쌍함을 표현한 사물의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게 하며, 흥과 신명을 통한 절정의 감동을 선사한다. 판소리 - 박성희 고수 - 신문범 진주교방 굿거리춤 - 하연화 반주 : 사물놀이 청 진주교방굿거리춤은 고려 문종때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관기제도에 의해 교방청에서 전승되어진 춤이다. 궁중교방 계열의 춤으로 고종조에 궁중무희였던 최완자가 낙향하여 교방청에서 전수하였고 여기에 김녹주의 소고춤이 더해져 이것이 현 보유자인 김수악 선생에게 전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춤의 성격은 한국 춤의 네 가지 요소인 한, 흥, 멋, 태를 고루 갖춘 춤으로서 차분하면서도 은은하며 섬세하면서도 애절한 무태로서 정, 중, 동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아지경으로 이르게 하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사물판굿 풍물판의 뛰어난 악기잽이들이 정제되고 절제된 호흡으로 악기연주와 춤 상모까지 한 호흡에 이루어지며 절정의 기량과 치배들간의 호흡을 보여주는 전통예술 공연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연주와 춤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유일한 공연 작품으로 악기별로 독특한 발림과 호흡이 있다. 악기별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허튼 놀음과 전체적인 동작의 통일성이 함께하는 공연이다. [ 출연 : 박종환, 최의철, 박순호, 김인수, 박성희, 하연화, 신문범, 김용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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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05-전무후무일 시 : 2005년 10월 8일 ~ 9일 장 소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춤을 오늘에 전해준 춤꾼들이 세월을 삭혀 만든 최고의 명무를 감상하는 반열의 한 판! 이 땅의 전통춤은 구한말의 재인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춤을 오늘에 전승한 것이다. 가교 역할을 맡은 제1 세대의 춤꾼들은 이제 8,90세의 최고 원로로 살아 숨쉬는 멋이 가득하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인과 세월 속에 잠적하여 그간 존재를 알지 못했던 명무(名舞)가 함께 출연하는 귀한 무대이다. '전무후무(全舞珝舞)'란 가장 완전한 춤을 이룬 진정한 명인의 춤이라는 의미로, 완전할 전(全), 춤 무(舞), 옥 이름 후(珝), 춤 무(舞). 평균 나이 80세가 넘으니 우리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판이 될 것이요 이후에 다시 꿈꿀 수 없는 반열의 판이 될 것이다. 이 공연을 위하여 조어된 말이고 후엔 이 공연을 기념하는 말로 남을 것이다. '들어올린 손끝 하나에, 내쉬는 호흡 한 자락에 인생과 연륜이 담긴 춤'으로 1998년 제1 서울세계무용축제 당시 프랑스 태양극단 연출자 아리안 무누슈킨과 브레멘탄츠테아터의 안무가 수잔 링케의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고 '육신은 날아가고 영혼이 춤추는 것 같아 . . .' 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 춤들이 다시 선보인다. 강선영 (1924~)의 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92호 예능보유자로 1988년 지정.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성대와 풍년을 축원하는 춤으로 빠르고 활기찬데다 춤장단이 복잡해서 음악을 알지 못하면 춤을 만들 수도, 출 수도 없다. 강선영은 13세에 한성준 고전무용연구소에 입소하여 승무 태평무 한량무 신선무 학춤 검무 등을 배웠고, 특히 한성준에게서 태평무 전체를 익힌 유일한 생존자. 19세에 한성준 무용단 부민관 공연에 출연하기 시작하여, 1953년 스승에게 배운 검무 살풀이춤 승무 바라춤을 조합하여 로 제1회 발표회 개최. 1998년 안성에 태평무전수관 건립. 이매방 (1927~)의 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한국 전통춤. 아비뇽축제에 참가하여 르 몽드지로부터 '성스러운 타악기와의 대화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온 몸에 축적된 에너지가 춤을 통해 숭고한 손 주위로 번지고 북채를 통해 밤으로 펴지는 음악이 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승무는 장관을 이루는 북가락, 세찬 장삼놀음, 빼어난 발디딤새의 춤으로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라 할만큼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 선새의 승무는 유려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그려낸 춤이다. 문장원 (1917~)의 은 첫 발을 떼는 춤이고, 일생을 송두리째 바쳐 완성해 가는 춤이다. 특정한 구성 없이 즉흥적으로 추어진다. 걷노라면 자연스레 밟히는 엇박은 관객의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남은 폐활량을 한데 모아 추임새를 뱉게 한다. 청송이 우거진 해변과 인적 드문 제실 등 놀이판에서 당대 최고의 명무였던 김기옥 김귀조 최소학에게 즉흥춤을 배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 야유 보유자. 김수악 (1926~)의 은 맨손으로 굿거리춤을 추면서 자진모리 대목에 소고춤을 엮어서 추는 전형적인 기방형의 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 지정. 10살에 진주 권번에 입적하여 본격적인 예능을 연마. 유성준 정정렬 이선유 김준섭 등에게 판소리를, 김종기 강태홍 이순근 박상근 등에게 가야금 아쟁 등 기악을, 한성준에게 승무를, 김녹주에게 소고무를, 최완자에게 굿거리춤 입춤 검무를 배웠다. 장금도 (1928~)의 민살풀이춤는 보통 살풀이춤이 수건을 들고 춤을 추는 반면 수건을 들지 않는 맨손으로 춘다하여 '민'자를 붙였다. 장단의 흐름은 살풀이 장단, 자진모리 장단, 다시 살풀이 장단으로 이어져 살풀이춤과 동일한 데, 가끔 흥이 나면 동살풀이춤까지 가미하기도 한다. 현재 유일한 전승자. 12살에 소화 권번에 입학하여 군대식 교육을 받았다. 김준섭 민옥행에게 소리를, 최창윤에게 승무를, 김백용에게 검무 화무 포구락을 배웠다. 특별한 춤사위를 내놓지 않으면서도 점점 멋을 더해가면서 장단을 이끄는 춤, 그래서 절대적으로 장단이 중요하다. 김덕명 (1924~)의 학춤은 옛적 출입하던 한량의 복장으로 추는 너울너울 학 같은 춤이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 지정. 훨훨 날다가 내려앉아 두루두루 먹이를 살피다 일순 획 낚아채는, 학의 상태를 오로지 선비의 차림으로 완벽하게 형용해 낸다. 학에 대한 정교한 모의를 가능케 하는 것은 탁월한 '디딤새' 때문이다. 83세 고령임에도 장전을 들어올릴 때 한치의 기울어짐 없이 단정하고 그 장단 속에 숨겨진 '대삼소삼'을 확실히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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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우리춤 스타초대전 - 봄 날, 우리춤 속으로…일자 : 2004년 4월 9일 ~ 10일 8:00 p.m. (토) 5:00 p.m. 장소 : 호암아트홀 문의 : 2263-4680 (공연기획 MCT) 기획 : 공연기획 MCT, 호암아트홀 후원 : 삼성생명 출연 : 서영님, 전은자, 윤미라, 강미선 우리춤 스타들이 펼치는 네 가지 춤의 빛깔, 그 아련하고도 낭만적인 시적 감수성 꽃보다 아름다운 일상을 꾸미는 한국무용가 네분을 어렵게 한자리에 모십니다. 우리춤 향기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우리들의 일상, 그런 일상을 우리와 공유하는 그 분들께 사랑을 담아 꽃 한 다발을 바치는 마음으로 이 무대를 마련합니다. 장고춤 원래 풍물놀이 중 설장고 개인놀이로 혼자 또는 두 사람이 장고를 비스듬히 어깨에 둘러메고 추는 춤이다. 다양한 장단의 변화와 도약하며 추는 흥겨운 춤이다. 진도북춤 북을 치면서 추는 춤이다. 북춤의 기본은 가락을 연주하는 것과 가락 사이에 춤을 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 북춤은 대개 북채가 하나이지만 진도북춤은 두개의 북채를 쓴다. 양손에 북채를 나눠들고 추며, 나는 듯 머무는 듯 몰아치고 되돌아가는 멋이 천길 낭떠러지에 내리꽂히는 물줄기같은 멋이 있다.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다스름, 호성, 후두룩 가락으로 넘어가는 북장단은 화려하고 발놀림, 팔사위가 멋들어진다. 부채춤 1954년 11월 김백봉에 의해 서울 시공관의 첫 공연에서 독무로 추어진 이래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군무로 재구성, 공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과 사랑을 받았으며, 1986년 서울아시안 게임에서도 400여명의 군무로 펼쳐져 장관을 이룬 작품이다. 오늘날 한국무용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으며 한국무용협회로부터 한국창작무용의 명작무로 지정을 받았다. 죽선과 한지의 소박하고 운치어린 부채의 움직임이 마치 만개한 연꽃이 물결따라 춤을 추는 듯 포근함과 우아함으로 감싸준다. 장고춤 장고는 우리민족의 고유 타악기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 악기로서 궁편과 채편의 음율이 마치 음과 양 같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며 음의 조화를 이룬다. 우리나라 고유 악기인 장고를 매고 흥과 멋으로 변주되어 지는 가락에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테크닉을 연희하는 이 춤은 최승희와 김백봉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한국민속춤의 하나이다. 달구벌 입춤 일명 수건춤, 덧배기춤이라고도 한다. 달구벌은 대구의 옛 지명이며, 옛 대구의 멋스러운 정서가 녹아있는 교방놀이춤으로서 여성의 다소곳하고 은근한 정감이 깃듯 춤이다. 박지홍에서 시작하여 최희선으로 이어지는 이 춤은 조심스럽게 흩날리는 수건과 활기찬 소고놀이의 허튼 춤이 조화를 이루어지면서 소박한 여성미를 나타내고 있다. 살풀이 춤 살풀이는 하얀 명주 수건을 들고 추는 춤으로 춤꾼 내면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고도의 기교가 요구된다. 무속무용에서 파생된 춤으로 액을 풀어 복을 맞아들인다는 종교적인 소원을 뜻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현존하는 여느 살풀이 춤보다 무속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박지홍류의 살풀이춤은 박지홍으로해서 권명화 선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대구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고춤(안무/전황) 농악에 편성되는 소고잡이들이 추는 춤으로 경기 선선소리를 부를 때도 이 춤을 춘다. 전복(戰服)에 상모가 달린 전립(戰笠)을 쓰고 자루가 달린 소고를 두드리면서 경쾌하게 움직이며 춘다. 소고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기보다 하나의 소도구로 이용되는 일이 많다. 춤의 모습은 농사행위와 수렵행위·전쟁행위로부터 형성된 돌격무진(突擊舞進) 동작과 포위하는 동작이 대부분이다. 전황 안무 『소고춤』은 초연이다. 호적 시나위에 맞추어 굿거리로 넘어가면서 자진모리로 끝낸다. 소고라는 악기가 무의자(無依者) 강미선 앞에서 신음을 외면할수 없지 않겠는가. 교방춤 진주 교방굿거리춤은 경남 무형문화재 제 21호로 교방춤의 춤사위가 가장 잘 나타난 춤이다. 이 춤은 권번춤의 한 형태인 입춤으로 우리 춤의 기본 성격이 농후하며, 권번에서 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모든 춤의 기초로 사용하였다. 특히 진주의 교방굿거리춤은 타 지역의 춤과는 달리 마지막 부분에 소고를 들고 추어 흥을 더해주는데, 이는 김수악이 진주 권번의 명기인 최완자에게서 배운 굿거리에, 김해 권번의 명기인 김녹주에게서 배운 소고놀이를 절묘하게 합쳐 만들어 낸 춤이다. 현재 기능보유자인 김수악에 이어 정혜원과 강미선에게 이 춤이 전수되고 있는데 오늘 공연되는 교방춤은 강미선이 재해석 한 교방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 1부 - 소고춤(강미선) 장고춤(서영님) 달구벌 입춤(윤미라) 부채춤(전은자) - 2부 - 살풀이 춤(윤미라) 장고춤(전은자) 교방춤(강미선) 진도북춤(서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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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 우리춤 속으로<3.4~5>-호암아트홀MCT 8주년 기념 [우리춤 스타초대전] 봄 날, 우리춤 속으로... ● 일 시 : 2003. 3. 4(화) ~ 5(수) 오후 7시 30분 ● 장 소 :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 ● 주 관 : 공연기획 MCT ● 문 의 : 02) 2263-4680 ● 출 연 : 양성옥(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황희연(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장) 윤미라(경희대학교 무용학부 교수) 강미선(한국체육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 프로그램 - 태평무(양성옥) - 진주 교방굿거리(강미선) 봄이 오면(강미선) 진쇠춤(윤미라) 산조춤(황희연)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황희연) 달구벌 허튼춤(윤미라) 장고춤(양성옥) ★ 양 성 옥 ☆ -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전수조교 태평무 -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 예능보유자 강선영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는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 를 축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위엄과 격조가 높으면서도 경쾌하고 가볍고도 절도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힘과 신명, 기량의 과시가 보이는 춤 이다. 장고춤 - 장고는 우리 민속악기의 가장 대표적인 리듬아악기로써 지방의 색향을 노래하듯 요염한 자태의 흥과 멋을 풍기며 여인의 미색을 그지없이 아름답게 표현하는 춤이다. ★ 황 희 연 ☆ - -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장 - 사)리을춤연구원 이사장 산조춤- 산조는 삼남지방에서 성행하였고, 특히 전라도에서 발달하였는데, 가야금, 거문고, 대금 등의 선율 악기를 장구반주에 곁들여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기악 독주곡의 한 형태이다. 무속음악인 시나 위와 민간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민간에서 발전시킨 음악장르로서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리게 시작했다가 점차 급한 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로 바뀌어 간다. 무용산조는 신무용기에 성립되었으며, 배명균류 산조는 禮와 道를 지키는 곧은 의식을 바탕으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흐트러짐없는 움직임을 특징으로한다. 특히 황희연의 산조는 명인 김영재(신쾌동류거문고 산조 무형 문화재 16호 보유자)의 해금산조와 어우러져 풍류와 멋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그려낸다. ★ 윤 미 라 ☆ - - 경희대학교 무용학부 교수 - 대한무용학회 이사 달구벌 허튼춤 - 일명 수건춤, 덧배기 춤이라고도 한다. 달구벌은 대구의 옛 지명이며, 옛 대구의 멋스러 운 정서가 녹아 있는 교방놀이춤으로서 여성의 다소곳하고 은근한 정감이 깃듯 춤이다. 박지홍에서 시작하여 최희선으로 이어지는이 춤은 조심스럽게 흩날리는 수건과 활기찬소고 놀이의 허튼 춤이 조화를 이루어지면서 소박한 여성미를 나타내고 있다. 진쇠춤 - 나라의 경사가 있을때나 궁궐에서 만조백관들이 모여 향연이 베풀어질 때, 왕이 각 고을의 원님들을 불러 춤을 추게 하였는데 이때 원님들이 쇠를 들고 춤을 춘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진쇠춤은 무관복차림에 꽹가리를 들고 추며벙거지에 늘인 색술과, 꽹가리에 늘인 오색끈이 화려함을 더해주는 복색으로 춤사위는외발뛰기와 꽹가리를 휘두르는 사위등이 특이하다. ★ 강 미 선 ☆ - -한국체육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김수악 전통춤보존회 회장 진주교방굿거리 - 진주 교방굿거리춤은 경남 무형문화재 제 21호로교방춤의 춤사위가 가장 잘 나타난 춤이다.이 춤은 권번춤의 한 형태인 입춤으로 우리 춤의기본 성격이 농후하며, 권번에서 춤을 교육하는과정에서 모든 춤의 기초로 사용하였다. 특히 진주의 교방굿거리춤은 타지역의 춤과는 달리 마지막 부분에 소고를 들고 추어 흥을 더해주는데 이는 김수악이 진주권번의 명기인 최완자에게서 배운 굿거리에 김해권번의 명기인 김녹주에게서 배운 소고놀이를 절묘하게 합쳐 만들어 낸 춤이다.현재 기능보유자인 김수악에 이어 정혜원과 강미선에게 이 춤이 전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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